朴玉洙 PASTOR OCK SOO PARK

 정통 복음주의

  • 자유주의 신학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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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을 통해 성경을 부정하는 사단의 궤계

     



     


     


    스펄젼의 결단

     

    “다윈의 진화론은 물론, 신(新) 신학의 고등비평 역시 불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고등비평은 사단의 술책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라는 미명 하에 고등비평을 허락한 교단과 결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오직 진리를 사수해야 된다는 한 가지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본분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거스리는 자가 있다면, 설사 그가 가장 절친한 친구일지라도 나는 적으로 간주하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챨스 스펄젼)


    1887년 10월, 35년 동안 영국 침례교단에 속해 사역을 해왔던 스펄젼이 공식적으로 교단에서 탈퇴한다는 발표를 했다. 당시 그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국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였기에, 그의 결단은 세계 기독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복음주의자들에게서는 ‘최후의 청교도’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분리주의자, 독선주의자’라는 수많은 종교인들의 빗발치는 비난도 감수해야만 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로 알려진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네클 교회의 목회자로 존경을 받던 그가,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교단과의 결별이란 극단의 처방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등비평이란 인본주의 성경관을 들고 나온 자유주의 신학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의 결단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이 신학이란 탈을 쓰고 나타난 사단의 궤계에 대해 온 세계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챨스 스펄젼은 ‘설교의 황제’로 유명한데, 그의 천부적인 설교 능력보다 더 귀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한 그의 열정이었다. 그는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가 15세 때 시골의 한 감리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어느 평신도 설교자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는 거듭난 후 ‘이제 나는 영원토록 당신의 소유물로서만 살겠습니다. 오직 당신 한 분만을 섬기며, 당신만을 기쁨으로 삼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서약한 후 5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복음만을 위해 살았다. 그런 그였기에 복음을 대적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펄젼이 복음을 전했던 19세기 영국은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때였다. 18세기 말 최초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물질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1848년 칼 막스의 공산주의 유물론과 1859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공개적이고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한 사상들은 모두 기독교계 외부에서 일어나 주로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내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하나님과 성경과 복음’을 믿는 신앙을 뿌리째 뽑고자 하는 무서운 사단의 궤계였다.

     

     

    신학의 역사


    신학이란 단어는 ‘하나님에 관한 체계화된 지식’이란 뜻으로 12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이고,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인데,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신학이다. 그렇기에 신학이 건전해야 신앙도 건전할 수 있고, 신학이 변질되면 신앙도 변질될 수밖에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시작된 기독교 역사는 크게 초대교회 시대, 중세교회 시대, 종교개혁 시대, 현대교회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이 네 시대 중 가장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뜨거웠던 시대는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대였고, 중세교회와 현대교회 시대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초대교회 시대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명확히 나타나고,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 시대였다. 특히, 하나님은 이미 가말리엘 문하에서 구약성경에 정통했던 사도 바울을 통해 최초로 복음을 자세하게 계시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의 서신들은 복음주의 신학의 절대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계시된 복음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유럽을 비롯해서 온 세계에 퍼져나가 사단의 진을 파하고 생명의 참 빛을 비추었다.


    그러나 AD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후 시작된 카톨릭의 지배 아래 놓여진 중세교회 시대에는 불행하게도 복음주의 신학이 가리워졌다. 콘스탄틴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보던 성경을 무시한 채 다른 성경으로 교체해버렸고, 성경의 가르침보다 교황과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더 중시하도록 했다. 그렇기에 로마 카톨릭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성경에 입각한 바른 신학이 정립될 수 없었다. 그래서 중세 시대는 ‘신학과 신앙의 암흑기’라고 불리운다. (물론, 세속화된 로마 카톨릭과 등진 채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보존해온 소수의 복음적인 교회들도 있었다.)

     

    다행히 16세기 마르틴 루터 등의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이 회복되었고,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보던 성경이 번역되어 모든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처럼 개혁 시대에는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신학을 매우 중요시 여겼기에 그에 비례하여 신앙도 견고히 세워질 수 있었다. 종교개혁 시대는 17세기 영국의 존 오웬과 존 번연, 18세기 영국의 요한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19세기 영국의 챨스 스펄젼과 챨스 스터드, 미국의 디엘 무디와 챨스 피니 등 영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전도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번영기가 도래하면서 유럽인들의 마음이 높아졌고,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 곧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사상의 교체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자유주의 신학도 대두되어 기독교 신앙은 급격히 변질되고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 인본주의 철학의 요람인 독일에서 시작하여 유럽을 휩쓸고 영국을 무너뜨린 후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 기독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은 한 마디로 ‘인본주의 철학과 결합된 신학’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철학 사상을 높이는 신학으로, ‘현대 사상의 주장들을 최대한 인정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는 17, 18세기 유럽에 널리 퍼진 3대 인본주의 사상인 경건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일어났다. 특히, 계몽주의는 신본주의 전통 체제에 반발하여 인간의 이성(理性)을 앞세우는 사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했다.

     

    대표적인 사상가들은 존 로크, 볼테르, 칸트, 헤겔, 루소, 니체 등 대부분 독일의 종교 철학자들로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중시했기에, 인간의 죄와 전적 부패를 가르치는 성경이 그들에게는 눈의 가시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인본주의 사상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부인해야만 했다. 즉, ‘동정녀 탄생’ ‘오병이어’ 등 그들의 철학과 상반되는, 하나님의 실존과 전능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성경의 내용들은 모두 부인했다. 심지어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는 그들의 철학은 경계 대상이었다.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채 지식적으로 신학을 추구하던 신학자들에게 계몽주의 사상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칸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독일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림)가 1799년에 기존 신학을 이성적으로 재정립한 ‘종교론’을 발표함으로 개개인의 이성에 의해 자유롭게 신학을 연구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대두되게 되었다. 물론, 칸트의 비판 철학과 윤리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가장 먼저 칸트의 비판 철학을 응용하여 고등비평이란 인본주의 성경관을 만들어냈다.


    고등비평은 성경도 일반 고대 종교 문서와 똑같은 조건으로 재해석해야 된다고 하면서,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볼 때 수많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성경의 여러 내용들을 검토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성경의 내용들은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성경관은 결국 성경이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합리적 이성과 경험에 의한 성경 해석이 진보적이라는 생각에 잡힌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고등비평에 사로잡혔다.


    고등비평을 앞세운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에르마허를 추종하는 독일의 3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인 알브레히트 리츨, 아돌프 하르낙, 월터 라우셴부시 등을 통해 급속히 유럽의 거듭나지 못한 다른 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전개


    19세기 초부터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 신학은, 영국을 복음으로 뒤흔든 챨스 스펄젼과 디엘 무디 등 복음주의 전도자들의 말년인 19세기 말에 비로소 영국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과 킹제임스(KJV) 성경을 통해 세계 복음의 역사를 주도해 온 영국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은, 먼저 300여년 동안이나 복음 전도자들의 성령의 무기로 사용된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했다. 즉, 1881년 최초로 KJV를 대체하는 개역(RV) 영어성경을 만든 이후 수많은 성경번역본들을 제작함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 성경에서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RV 성경을 만든 호르트는 “확실히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기까지 고통 당하셨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못한 것은 없다. 정말로 그것은 거의 보편적인 이단의 한 측면인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적그리스도적인 신학자였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성경은 NIV인데, NIV의 편집위원장의 말을 게일 립링거(G.A. Riplinger)는 자신의 저서인 ‘뉴에이지 성경들’(New Age Versions)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것(NIV)은 오늘날 정통 개신교계에 팽배해 있는 크나큰 오류, 즉 중생(重生)이 믿음에 의한 것이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오류를 지적해주고 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은 몇 되지 않는다.”(‘New Age Bible Versions’ p2, AV Publications, 1993)


    복음의 역사에 가장 크게 쓰임 받은 KJV를 다른 성경으로 대체하는데 성공하며 영국의 교회를 몰락시킨 자유주의 신학은, 다음으로 신학교를 장악하는 일을 시도했다. 신학교에 대한 침투는 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은 복음주의 신학으로 출발했던 하버드, 예일 대학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19세기 초 미국 북장로교단의 직영 신학교로 창설되어 미국 신학교계를 주도해 온 프린스턴 대학까지 침투했다.

     

    결국, 1929년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진들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 사상에 물들자, 복음주의 신학자였던 그레샴 메이천 교수는 그를 따르는 교수들과 함께 프린스턴 대학을 탈퇴하여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그 후에도 자유주의 신학의 공격은 계속되어 수많은 신학교가 변질되었다.


    이와 같이 수많은 미국 신학교들을 자유주의 신학으로 물들여놓는 데 성공한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은 사회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신학으로 변종하면서 신학 자체에 대한 혼돈을 만들었다. 즉, 초기에는 사회 복지 및 교육 사업 등 사회복음주의를 강조하면서 출현했다가 중기에는 민중신학, 세속신학, 정치신학, 사신신학, 해방신학 등으로 탈바꿈을 하더니 최근에는 흑인신학, 여성신학이란 모습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복음의 생명이 없는 죽은 신학들인 것이다. 즉, 자유라는 미명 하에 절대 기준을 상실한 것으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거짓된 인간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종교 다원주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는 활동은 ‘종교통합’, 즉 에큐메니칼 운동이고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는 사상은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이다. 종교통합과 종교다원주의는 복음과 상관없이 모든 종교를 인정하면서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시도로,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이 지구상에서 없애려고 하는 무서운 사단의 궤계이다.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단체가 세계 최대의 교회 연합기관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48년 죤 베네트, 브롬리 옥스남, 헨리 반 듀젠, 추첸 차오, 윌리엄 템플 등 대표적인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창설된 이래, 개신교의 교파의 벽을 허물어 왔고, 마르틴 루터와 요한 웨슬리 등의 복음전도자들이 적그리스도로 여겨왔던 로마 카톨릭과 손을 잡았다. 이는 지난 1999년 루터교를 뒤이어 2006년 7월 23일 한국에서 열린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WMC)의 에큐메니칼 예배에서 감리교가 가톨릭의 대표들과 ‘칭의 교리에 대한 교리적 합의 선언문’에 서명함으로 공식화 되었다.


    심지어 세계교회협의회 종교 간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더크 멀더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느끼십니까?”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M. H. Reynolds,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The Cup of the Lord or the Cup of Devils?, p8)


    또한,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공공연하게 ‘성경은 바나나와 같다. 먹지 못하는 껍질은 벗겨 내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부분만 취해서 먹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성경의 내용 중 인간에 대해 부정적이고 반대되는 것은 제거하고,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부합되는 부분은 취하자는 뜻이다. 즉, 이들은 철저히 자기 구미에 맞는 성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침투한 자유주의 신학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미국 교계의 영향을 받는 한국에도 예외 없이 침투하여 한국의 수많은 신학교와 교회를 잠식했다. 1992년 감신대의 B 총장이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주장한 일이나, 지난 2007년 10월 13일 ‘길거리 전도’에 대해 취재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C 교수(한신대 신학과)와 R(전 대광고 교목실장) 씨가 “사실 성서는 기록, 전승, 편집된 것으로, 신학을 공부할 때 다 배우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목사들이 교인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주장한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깊이 한국의 신학교에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의 지부격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가 있는데, 이 단체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이라 할 수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이 소속되어 있다. 특히, 순복음교회의 J 목사는 2004년 5월 12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다원주의를 강조했다.

     

    “불교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가르침 중 똑같은 것이 매우 많습니다. 일부 목회자들이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유아독존적인 생각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모든 종교는 평등합니다. 불교는 불교만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만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우는 것은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어긋난 행동입니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타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교계의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 사상에 입각한 발언에 반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흐름을 이어가던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을 무섭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전 세계의 신학교가 무너지면서 개신교인의 수가 급감하며 기독교는 소수 종교로 몰락하고 있다.

     

    대신 이슬람교와 카톨릭 교인들의 수는 급증하는 추세라고 하는데, 특히 이슬람교는 2억에서 12억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개신교 국가들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만약 전 세계적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미국조차 2040년경엔 더 이상 기독교 국가로 불리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이 온 인류에 미친 것처럼 목회자의 터가 되는 신학의 타락은 참으로 치명적이지 아니할 수 없다. 인류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는 말씀처럼,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기준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고 하면서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낸, 가장 간교했던 사단의 궤계가 신학이란 탈을 뒤집어쓰고 재현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미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이 시대의 정통 복음주의


    “온 세상에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분명히 알릴 것입니다.”


    지난 2007년 9월 25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을 가르치길 원하는 박옥수 목사의 마음에 일어난 주님의 뜻을 따라 미국 뉴욕에서 마하나임 대학이 설립되었다. 그 후 아프리카 케냐와 가나 등 전 세계에 마하나임 바이블 칼리지가 속속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마하나임 바이블 칼리지에 등록한 학생들은 대부분 현지 목회자들인데, 놀랍게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미약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배우는 교인들의 성경 지식은 얼마나 되겠는가? 만일 그들이 올바른 복음주의 신학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인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 마지막 시대는 정말 올바른 복음주의 신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정통 복음주의 전도자와 정통 복음주의 교회를 허락하시고 그 동안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는데, 이제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무너진 세계 기독교계를 복음주의 신학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앞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끝날까지 주님과 함께하게 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초대교회나 종교개혁 시대처럼 다시 일어날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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