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玉洙 PASTOR OCK SOO PARK

  • 남부러울 것 없는 미스코리아 출신이었지만...




  • 1.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어린 시절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종종 이야기를 하신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난 나를 보러 오신 친척 분들과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어쩜 이렇게 아기가 예쁘냐? 꼭 혼혈아 같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남다르게 이국적 용모를 가진 초등학교 시절에도, 집을 방문한 많은 아버지 친구들로부터 “인미는 미스코리아 감이야.”라는 이야기를 늘 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별 어려움 없이 자랐다.

     

     

    2. 테니스 선수 시절 심겨진 마음, 노력하면 돼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테니스 선수였던 오빠의 시합을 보면서 테니스에 매료되어 배우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어서인지 인천시 대표 테니스 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 당시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열심히 하면 안되는 게 없다. 노력하면 돼”라고 자주 말하며 엄하게 훈련시키셨다. 학창 시절 늘 듣던 그 음성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 깊이 심겨졌다. “그래! 하면 되지, 안되는 게 어디 있어! 노력하면 다 될 수 있어!”

     

     

    3. 실제가 된 미스코리아 조인미

    대학 입시를 위해 고2 때 테니스 팀을 떠났지만, 선수 시절 심겨진 노력하면 된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내 삶을 강하게 이끄는 구심점이 되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어린 시절 늘 들어왔던 ‘미스코리아 조인미’가 실제가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학교 앞 미용실 원장님의 소개로 미스코리아만 전문적으로 만들고 훈련하여 배출한다는 명동의 유명 미용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미용실에는 15명의 미스코리아 후보들이 외모를 가꾸며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결국은 내가 미스코리아에 입상하게 되었다.

     

     

    4. 미스코리아가 된 후 한없이 높아진 마음


    미스코리아 당선은 내 마음과 삶을 너무나 바꾸었다.

    TV와 신문, 그리고 학교 플래카드에 내 이름이 뜨며 교정에서 나를 몰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쟤가 미스코리아잖아”라는 주위의 부러움과 질시 속에서 콧대를 한껏 높이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공부보다는 외모에 더 신경 쓰게 되었고, 미스코리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집안 좋은 남학생들과 늘 호텔 뷔페에서 미팅을 가졌다. 연예계 제의도 들어왔지만, 내가 보기에 불합리한 연예계의 관행을 보면서 포기했다.

     

     

    5. 내 마음을 더욱 굳힌 취업과 대학원 합격

     

    그러던 내게 졸업과 함께 취업 문제가 다가왔다. 대학 졸업 후 당연히 취직해야 된다는 가족과 친지들의 권유를 따라 한 회사에 지원하여 무사히 합격했다. 그런데 입사 후 6개월 정도 지나니 사내에 높은 지위를 차지한 여 상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그들 대부분이 석사 학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의 도전 정신이 자극되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준비를 하여 6개월 만에 합격했다. “역시, 난 하면 돼. 안 되는 것은 없어.” 순조로운 취업과 대학원 입학은, 노력하면 된다는 마음을 더욱 굳히게 해주었다.

     

     

    6. 하면 된다는 노력의 전도사로

     

    대학원 졸업 후에는 성신여대, 인천대, 국제대, 영동대, 숙명여대, 경기대 등을 전전하며 강의를 나갔다. 30살에 모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내 가슴은 뿌듯했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력하면 되니 열심히 노력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집에서 4시에 일어나 직장 생활과 대학 강의를 다니다가 밤 12시 30분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피곤한 삶이었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철저히 나를 신뢰했다.

     

     

    7. 모두가 부러워했던 환상의 결혼식

     

    2004년에는 그토록 바라던 박사 학위 과정에도 입학하게 되었다. 내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환상의 결혼이었다. 혼기(婚期)를 생각하시는 부모님의 등쌀에 박사 과정만 입학하면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마침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던 한 대학 교수가 관심을 가져왔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벌과 대학 교수라는 사실에 몇 번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결혼 결정을 내렸다. 양쪽 집안에서 서둘러 급히 진행된 결혼식에는 많은 교수님들이 참석했고, 선후배와 친구들 모두가 부러워했다.

     

     

    8. 그러나 … 악몽과도 같았던 결혼 생활

     

    이제 모든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토록 자상하게 보였던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의처증 증세를 보인 것이다. 핑크빛 달콤한 신혼의 환상은 산산이 깨어졌고, 악몽과도 같은 나날이 연속되었다. 처음에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해서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참고 기다렸지만,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혼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다. 하지만 안 되었다. 하면 된다는 신조(信條)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를 낳은 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9.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철저히 무너진 마음

     

    그러나 이혼이 끝이 아니었다. 아이의 양육권을 받았지만, 아이는 남편과 매월 2회 만나야만 되었다. 아빠와 함께 지내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하며 겁을 내는 아이가 떠나는 날, 나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교회에 다녔기에 아빠를 만나고 돌아온 아이 머리에 안수하며 기도했는데, 아이 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와 방을 어두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보면서 너무 무서워 잠을 잘 수 없었다.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고,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결국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10. 누구도 붙잡아줄 수 없는 가운데 만난 박 목사님

     

    그냥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내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나를 붙잡아줄 수 없었고,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막연히 하나님만 간절히 찾았다. 무작정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미국으로 가려고 준비하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2008년 12월 28일 일산 아람누리극장 크리스마스 칸타타에 참석하게 되었다. 산타 복장을 입고 공연하는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며, 우리 아이를 생각하니 더 슬펐다. 공연 전 박옥수 목사님을 뵈었는데,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10분 정도 들으시고는 ‘시간이 없으니 내일 대덕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11. 목사님과의 상담을 통해 들어온 한줄기 빛

     

    참 이상하게도 처음 뵌 목사님의 제안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연말이라 교수회 등 행사가 많아 바빴지만, 다음날 대덕의 기쁜소식선교회 수양회에 참석했다. 12월 30일,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목사님과 상담을 가지면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어두움이 사라지고 빛이 임한 것이다.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믿음의 말씀들을 목사님으로부터 차근차근 듣던 중,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라는 말씀이 내 모든 죄를 사하고 내 영혼을 거듭나게 했다. 내가 일을 하는 세계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계가 내게도 임한 것이다.

     

     

    12.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열리는 새로운 삶


    ‘내가 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던 내 삶의 결국은 고통과 불행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삶은 너무나 달랐다. 가장 먼저 매일 밤 나를 괴롭혔던 어둠이 걷히며 불면증이 사라졌고, 전에는 갖지 못했던 쉼과 평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 등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고 믿음의 삶 안으로 들어왔다. 또한, 하나님은 내게 특별한 선물도 주셨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박사 과정도 거의 포기했는데, 논문을 도울 사람과 필요한 비용을 은혜로 허락하셔서 2010년 8월, 7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는 마음과 함께.

     

     

    13. 박 목사님을 오해하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

     

    한번은 10년 동안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전화를 하여 박 목사님 교회에 다니면 안 된다고 강하게 권유했다. 그분에게 박 목사님을 뵌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만나지는 못했지만 무수히 많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선생님, 저는 박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만나보지도 않은 분을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평가한다면 모순입니다. 제 인생을 그분이 복음을 통해 구하셨는걸요.”라고 대답하며 너무 안타까웠다. 목사님이 가지신 귀한 복음과 믿음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거짓된 오해에서 벗어나 나와 같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복된 삶으로 바뀔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14.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목사님의 신간을 전하며

     


    지금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얻는 삶을 살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특히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박 목사님의 신간인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의 마케팅본부장을 맡게 하신 것이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는 국내 최고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자기계발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책 안에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목사님께 허락된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가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목사님을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내 인생에 임한 축복의 터닝포인트를 많은 이들도 얻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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